[가톨릭신문]한 사람이 건넨 사랑, 수많은 이에게 ‘새 생명’으로 피어납니다
관리자 | 2024-06-09 | 조회 484
[생명 주일 특집] 가장 숭고한 사랑의 실천 ‘장기기증’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나누고 간 고(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 가득한 사랑으로 세상을 봤던 그의 눈은 앞을 보지 못한 이에게 전해져 더 큰 사랑을 키워내는 원동력이 됐다. 소방관을 꿈꿨던 정의로운 청년의 심장은 희망을 잃어가는 이에게 전해져 더욱 뜨겁고 단단한 살아갈 희망을 선물했다. 이처럼 생명을 나누는 기적 같은 일은 이 세상에 진짜 기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 생명 나눔의 실천, 장기기증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준 성체성사의 신비는 다른 방식과 모습으로 현재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침을 전한다. 생명 나눔의 숭고한 정신을 실현하는 장기이식이 그중 하나다. 교회의 사명인 생명 문화 확산을 위해 가장 먼저 실천한 곳이 가톨릭계 병원이다.
1969년 3월, 명동 성모병원에서 신장이식 수술이 성공하며 국내 장기이식 역사가 시작됐다. 미국에서 세계 최초로 신장이식이 성공한지 15년 만에 이룬 성과다. 은평성모병원은 2021년 김수환추기경 기념 장기이식병원을 열고 장기이식에 대한 대중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발걸음에 힘을 보탰다.
의학적 노력뿐 아니라 생명 나눔 인식 개선을 위해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장기기증센터는 생명 나눔 캠페인과 장기기증자 봉헌의 날을 운영하고 있다.
장기기증은 크게 뇌사 시 기증과 사망 후 기증, 생체 기증 등으로 나뉜다.
뇌사 판정을 받았을 경우 가족의 기증 동의를 통해 기증과 이식이 가능하다. 사망 후 기증하는 경우는 각막 외에 뼈와 피부 등의 일부 조직만 기증할 수 있다. 생체 기증은 살아있을 때 고형장기 중 신장 1개와 간의 일부를 타인에게 기증하는 행위를 말한다. 뇌사의 경우 2차에 걸친 뇌사 조사, 뇌파검사, 뇌사판정위원회를 통해 철저히 검증한 뒤 최종적으로 판정한다.
뇌사자는 최대 9명에게 장기이식이 가능하지만 뇌사자가 생전에 장기기증 서약을 했다하더라도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기에 이식이 결정되는 것이 쉽지 않다. 우리나라의 보호자 동의율은 33%에 불과해 미국이나 캐나다(90%)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장기이식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교회가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장기기증에 대한 긍정적 높여야
우리나라 뇌사 기증자는 꾸준히 감소해 2016년 573명에서 2022년 405명에 그쳤다. 전년(442명)에 비해서 8.4% 줄어든 수치다. 해외와 비교하면 더욱 차이가 크다. 2019년 기준 스페인의 뇌사 기증자는 2301명, 미국 1만1870명, 이탈리아 1495명, 영국 1653명이다. 한국에서는 매일 7.9명의 이식 대기 환자가 간절한 기다림 속에서 생명을 잃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 은윤주 팀장은 “미디어에서 여러 생명을 살린 기증자의 이야기가 홍보되면 잠시 장기기증이 증가하다가 기증자 예우 문제가 불거지면 급격히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며 “단편적인 사건으로 장기기증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면 꾸준히 장기기증에 대한 올바른 정보와 긍정적인 인식을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한 사람이 뿌린 생명의 씨앗, 값진 열매로
갑자기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슬픔에 빠진 이들에게 ‘장기기증’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 사람들.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 박지연(가타리나) 장기이식코디네이터는 “매 순간이 어려웠지만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는 여정에 동행했던 숭고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자 시작한 간호사. 하지만 장기이식센터에서는 누군가의 생명이 누군가의 죽음과 연결돼 있었다.
“이식을 받은 수혜자 분들이 희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가치 있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시는 모습을 보며 장기이식이 누군가의 마지막에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16년 차임에도 뇌사자 가족들에게 ‘장기이식’을 설득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지만, 누군가가 뿌린 생명의 씨앗이 수많은 열매를 맺고 세상을 밝힐 수 있다는 믿음은 그가 오늘도 장기이식코디네이터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장기이식으로 새 삶을 선물 받은 이식 환자분들은 정말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십니다. 아마 자신에게 삶을 선물한 분들을 생각해서 더욱 잘 살고자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장기기증자분들이 선물을 남기고 간 곳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유가족들도 수혜자분들이 건강한 삶을 살고 계시는 것에 큰 위로를 받고 힘을 내 살아가시죠. 한 사람이 뿌린 생명의 씨앗은 그렇게 여러 사람의 삶을 가치 있고 풍요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여러 의료 기관들과 협업해 빠른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기증 및 이식 과정이 진행되도록 돕는 장기이식코디네이터. 365일, 24시간 대기를 하며 바쁜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도 장기이식센터 의료진들이 가장 정성을 다해 진행하는 업무가 장기기증자를 위한 기도다.
“장기이식 수술을 하기 전에 기증자를 위한 기도를 모든 의료진이 모인 가운데 함께 합니다. 그때만큼은 바쁘게 뛰어다닌 일을 잊고 생명을 나눠주신 숭고한 실천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진심으로 전하며 기도합니다.”
삶과 죽음은 인간이 결정할 수 없지만 내가 가진 것을 나눠 다른 사람에게 삶을 선물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축복이다. 박지연 코디네이터는 “장기기증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사랑의 실천”이라며 “누군가가 나눈 씨앗으로 누군가의 삶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더욱 따뜻하고 생명력이 넘칠 거라 생각된다”고 말했다.
기사원문 링크 ->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40429500261